1. 한국철도 경쟁의 시작
2011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수서평택고속선 사업권을 민영화하는 것을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민간 사업자가 운영하여 한국철도공사와 경쟁하면 그에 따라 운임을 인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영화는 여야 양 측에서 반대하는 상황이어서 민영화는 무산되었다.
민영화가 무산되자 정부 측에서는 한국철도공사의 자회사를 설립하는 것을 제시하였다. 한국철도공사를 지주회사+자회사 형태로 변경하며, 수서평택고속선은 한국철도공사가 지분 30%를 출자하는 자회사를 만들어 고속열차를 운영하도록 추진하였다. 나머지 70%는 국민연금공단 등에서 출자하고 민간투자는 불허.
2013년 말, 한국철도공사와 국토부 간에 수서평택고속선 고속철도를 관리할 자회사에 대한 최종안이 결정되었다.
- 한국철도공사 계열의 법인 자회사를 설립하여 수서발 고속선 열차를 운영한다.
- 자회사의 출자 지분은 코레일 41%, 공공자금 59%로 한다. 한국철도공사의 공공자금 참여 부족 시 정부 운영기금을 투입하고, 주식 양도·매매 대상을 정부·공공기관 등으로 제한한다.
- 한국철도공사가 2016년부터 영업흑자 달성 시 10%의 범위 내에서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
2. 한 지붕 아래에서의 경쟁 아닌 경쟁
이렇게 설립된 (주)에스알은 2016년 12월 9일 SRT를 운행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열차 운행이 한국철도공사에 의존적인 형태를 보였다. 에스알은 열차 운행, 역사 관리를 담당하며 열차 정비, 선로 시설물 관리 등은 한국철도공사에서 맡는 것으로, 전체 열차 32편성 중 200호대 열차인 22개 편성은 한국철도공사가 소유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나머지 300호대 10개 편성은 에스알이 소유)
KTX와 SRT의 경쟁이 형평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저번 글에서도 말했듯이 한국철도공사는 고속열차로 수익을 내서 다른 철도노선의 적자를 메꾸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SR은 오직 고속열차만 운영하고, 인기가 많은 강남행 노선을 독점 운영하고 있다 보니 형평성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한국철도공사가 경영상의 심각한 결함이 있어 적자가 심한 게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결국엔 한국철도공사는 수익성이 떨어지는 기업으로 인식하게 되고 국민들에게 철도 민영화에 대한 여론을 조성시킨다는 목적으로 에스알을 설립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존재했다.
운행 방식에 대해서도 경쟁이 제대로 작동하는 건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있다. KTX는 서울, 용산, 광명 등을 행선지로 하고, SRT는 동탄, 수서를 행선지로 하는데, 지방에서 수도권 방면으로 올라가는 승객은 자신의 목적지에 따라 열차를 택하지, 같은 노선을 운항하는 항공사 중 서비스가 좋고 요금이 저렴한 것을 택하는 것처럼 열차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2018년, 문재인 정부 때 에스알이 기타공공기관으로 지정되면서 철도 경쟁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명분으로 이루어진 민영화는 끝나고 말았다.
3. 통복터널 단전 사고 뒷수습, 코레일이?
2022년 12월 30일, 수서평택고속선 SR분기-평택지제 구간 통복터널 내 전차선이 단전되어 SRT 열차 32대 중 17대가 고장나면서 고속열차가 대거 지연되는 등의 피해가 발생하였다. 이 사고가 발생한 뒤, 한국철도공사는 KTX 열차 2개 편성을 지원하면서 수서평택고속선에 KTX가 입선하는 진풍경을 볼 수 있었다. 근데 에스알의 설립은 철도 경쟁체제를 조성하기 위함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근데 왜 이른바 '경쟁사'라는 곳에서 '경쟁사'의 사고 수습을 대신해 주는가? 이게 정녕 경쟁체제라고 볼 수 있는가?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이종국 에스알 대표이사는 이 사고의 책임이 한국철도공사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 후 에스알은 한국철도와 결별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근데 결별이 가능하기는 한가? 차량 점검, 시설물 점검, 승차권 매표(코레일과 SR은 같은 예매 전산을 공유하고 있다.), 차량 등 한국철도에 위탁하고 있는 게 한두가지가 아닌데, 심지어 차량은 앞서 말했듯이 절반 이상이 자신의 차량이 아닌데 어떻게 결별할 수가 있는가? 사실상 에스알은 한국철도공사에 기생하고 있는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그와중에 결별하겠다면서 한국철도공사에 여유차량을 임대해 달라는 앞뒤가 다른 태도를 보이면서 많은 비판이 거세졌다.
4. 끝끝내 KTX는 수서로 갈 수 없는가
2023년 9월, SRT가 전라선, 동해선, 경전선으로 노선망을 확대하였다. 근데 잠깐, 새로운 노선을 운행하려면 그만큼 더 많은 열차가 필요할텐데 어떻게 했었는가? 바로 경부선에 쓸 열차로 돌려막고 정비 시간을 줄이는 것으로 해결했다. SRT 전체 열차 32개 편성 중 22개 편성은 운행하고, 나머지 10대는 정비 시간을 가지는 방식으로 운행했다. 전체 운행하는 22편성도 예매전쟁에 시달려야 하여 수요 대비 공급이 턱없이 모자란 상황. 그 상황에서 노선망을 확대하려고 경부선 열차 수를 주중 10회 감축하였고, 그 결과 수서-부산 구간의 좌석 수가 4,000여석 증발하였다. 또 하루에 운행하는 열차를 1대 더 늘리기로 했는데, 그만큼 차량의 정비 시간이 줄어들며, 이는 SR과 승객 모두의 안전에 큰 위협이 되는 사안이다.
따라서 가장 큰 피해를 본 부산시에서는 수서행 고속열차 증편을 요구했으나 정부는 그 보상으로 서울행 KTX를 증편하였다. 서울역과 수서역은 커버하는 범위가 정반대인데 서울행 KTX 증편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차라리 그 KTX를 수서행으로 투입한다면 차량 부족 문제도 덜 수 있을테고, 좌석 공급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겠고, 위에서 KTX가 멀쩡히 수서평택고속선에 입선할 수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본 시민들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터질 지경이었을 것이다. 부산 방면 외에도 광주, 여수, 진주, 포항발 수서행 고속열차도 KTX로 투입하면 SRT만을 이용하는 배차보다 더 많은 열차를 편성할 수 있을 것이므로 수서행 KTX를 편성하면 해결될 문제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끝끝내 KTX를 수서역으로 보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어떤 정치적 문제가 엮여 있음을 시사한다.
5. 이재명 대통령이 고속열차 통합을 추진하다
2025년 6월 4일, KTX-SRT 통합을 내세운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 후 이재명 대통령은 "주식회사 SR은 매각하려고 만든 거 아니냐"며 "알토란같은 거 떼 가지고 민간에 팔아 먹으려고 그럽니까. 매각 못 하게 빨리 합쳐 놓으세요."라며 고속열차 통합을 강력히 추진하였다. 2026년 1월에는 SRT와 KTX-산천 간의 중련 시운전이 실시되었고, 2월에는 SRT의 서울역 방면 시운전이 실시되었다. 이어서 KTX-1의 수서 방면 시운전이 진행되었다. 2월 25일부터는 서울발 SRT, 수서발 KTX의 왕복 1회 운행이 실시되었다.
7월 14일부터 코레일-SR간 통합회원 가입 절차가 실시되었다. 다음달에는 신규 통합 어플리케이션인 '코레일+'가 공개되었으며, 기존 코레일톡 업데이트를 통해 설치할 수 있다. 9월부터는 완전히 기업과 브랜드가 통합되어 통합적으로 열차가 운행하기 시작할 예정이다. 그에 따라 통합 고속열차 예약은 8월 5일부터 실시되었다.
6. 의문을 가질 수 있는 것
고속철도의 통합이 이루어지면 요금이 오를 수 있지 않겠는가?
현재 SRT는 공용구간에서 KTX보다 저렴한 운임을 가지는 점에서 큰 장점이 있다. 인기가 많은 수서행 노선을 독점하는 마당에 요금까지 저렴해져 버리니 늘 예매전쟁에 시달려야 한다. KTX와 SRT 간의 경쟁 체제가 사라지면 KTX의 운임이 인상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고속열차를 비롯한 열차 운임은 운영사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요금 책정은 철도사업법에 의해 요금을 규제하고 있고, 그렇기에 14년 동안 인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다.
철도사업법 제9조(여객 운임ㆍ요금의 신고 등)
① 철도사업자는 여객에 대한 운임(여객운송에 대한 직접적인 대가를 말하며, 여객운송과 관련된 설비ㆍ용역에 대한 대가는 제외한다. 이하 같다)ㆍ요금(이하 “여객 운임ㆍ요금”이라 한다)을 국토교통부장관에게 신고하여야 한다. 이를 변경하려는 경우에도 같다.
② 철도사업자는 여객 운임ㆍ요금을 정하거나 변경하는 경우에는 원가(原價)와 버스 등 다른 교통수단의 여객 운임ㆍ요금과의 형평성 등을 고려하여야 한다. 이 경우 여객에 대한 운임은 제4조제2항에 따른 사업용철도노선의 분류, 제4조의2에 따른 철도차량의 유형 등을 고려하여 국토교통부장관이 지정ㆍ고시한 상한을 초과하여서는 아니 된다.
③ 국토교통부장관은 제2항에 따라 여객 운임의 상한을 지정하려면 미리 재정경제부장관과 협의하여야 한다.
④ 국토교통부장관은 제1항에 따른 신고 또는 변경신고를 받은 날부터 3일 이내에 신고수리 여부를 신고인에게 통지하여야 한다.
⑤ 철도사업자는 제1항에 따라 신고 또는 변경신고를 한 여객 운임ㆍ요금을 그 시행 1주일 이전에 인터넷 홈페이지, 관계 역ㆍ영업소 및 사업소 등 일반인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게시하여야 한다.
위에서 볼 수 있듯이 여객운임을 국토부 장관이 정한 상한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 근데 잠깐, 근데 SRT는 왜 KTX보다 운임이 저렴한 것인가? 그것 또한 에스알에서 책정한 게 아니라 경쟁의 결과랍시고 정부가 결정한 것이다.
철도 운임은 14년째 동결되어 왔다. 현재 한국철도공사의 적자폭은 인건비, 물가, 유지보수 비용의 상승으로 인해 점점 커져만 가는 상황인데 운임을 동결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14년 전인 2012년 당시 짜장면 가격은 약 4,400원, 서울시내버스 요금은 1,050원이었다. 물가가 오른 현재는 짜장면은 7,500원, 서울시내버스는 1,500원으로 올랐으며, 2012년에 대해 2026년의 소비자물가지수는 122.5로 22.5% 상승하였다. 그러나 통합이 진행되면서 운임이 동결되기는커녕 오히려 낮아지기만 하였으니, 한국철도공사의 재정상태가 심히 걱정되기만 할 뿐 아니라, 고속철도의 흑자를 통해 운영되는 일반노선의 운영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운임이 낮아진 채로 운영되는 3년이 지나고 운임이 인상되면, 경쟁 체제가 무너져서 그런 게 아니라, 지속할 수 있는 한국철도의 미래를 위한 운임의 현실화로 받아들였으면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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